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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공장에서 받은 견적서를 열면 보통 숫자 하나가 크게 보입니다. 개당 얼마. 그 숫자를 보고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조금 더 안 될까요"입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단가를 깎으면, 깎인 만큼이 다른 칸에서 조용히 돌아옵니다. 포장이 얇아지고, 검사 단계가 빠지고, 납기가 2주 밀립니다. 처음에는 그게 보이지 않습니다. 컨테이너를 열고 나서야 보입니다.

단가는 협상의 시작이 아니라 결과입니다
첫 수입을 준비하는 분들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견적서 한 장을 놓고 단가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공장 입장에서 보면 이건 다루기 쉬운 상대입니다. 조건을 안 물어보는 상대에게는 조건을 유리하게 써 두면 되니까요.
반대로 조건을 하나씩 짚어 오는 상대에게는 처음부터 정직한 숫자를 냅니다. 어차피 나중에 다 걸리니까요. 그래서 협상을 잘한다는 건 말솜씨보다 물어볼 항목을 알고 있느냐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아래 다섯 칸을 채우기 전까지는 단가 이야기를 미루시는 편이 낫습니다. 다섯 칸이 채워지면 단가는 대개 저절로 정리됩니다.
첫째 칸 — 이 숫자는 어디까지 포함인가
개당 3달러라는 답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이 3달러가 공장 문 앞 기준인지, 중국 항구에 실어 준 기준인지, 부산항까지 온 기준인지에 따라 실제로 내는 돈이 달라집니다.
공장 문 앞 기준이면 중국 내륙 운송비, 수출 통관 비용, 항구까지 가는 트럭비가 전부 우리 몫입니다. 소량이면 이 비용이 물건값의 30%를 넘기도 합니다. 그래서 견적을 요청할 때 조건을 먼저 지정해서 물어보는 게 낫습니다. 같은 조건으로 두세 곳에서 받아야 비교가 됩니다.
한 가지 덧붙이면, 견적서에 조건이 아예 안 적혀 있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그러면 서로 다른 걸 상상한 채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 한 줄을 확인하는 데는 메시지 한 통이면 됩니다.
여기에 국내에서 붙는 항목이 또 있습니다. 관세, 부가세, 통관 수수료, 창고료, 국내 배송비. 이걸 다 더한 숫자가 진짜 원가입니다. 물건값만 보고 마진을 계산하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둘째 칸 — 최소수량과 금형비는 따로 봅니다
최소주문수량을 낮춰 달라고 하면 대개 단가가 올라갑니다. 당연합니다. 세팅하는 데 드는 시간은 500개를 만들든 5,000개를 만들든 비슷하니까요.
이때 물어볼 게 하나 있습니다. 올라간 단가가 세팅 비용 때문인지, 원자재를 소량으로 사야 해서인지. 앞쪽이면 1회성이라 두 번째 주문부터는 내려가야 정상입니다. 뒤쪽이면 수량이 늘기 전까지 계속 그 단가입니다. 이 구분을 안 하면 재주문 때 같은 단가를 그대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금형이 필요한 제품이면 금형비를 단가에 녹여 주겠다는 제안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편해 보이지만 그 금형의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는지가 흐려집니다. 나중에 공장을 옮기려 할 때 금형을 못 가져오는 상황이 여기서 생깁니다.
금형비는 따로 내고, 소유권과 보관 책임을 문서에 적어 두는 편이 낫습니다. 금액이 적지 않으니 협상 여지도 여기서 더 큽니다.
셋째 칸 — 원산지증명서를 받을 수 있는가
이 칸이 단가 협상에서 가장 큰 금액을 움직이는데, 첫 거래에서는 잘 안 물어봅니다.
한중 FTA는 2015년 12월 20일에 발효됐습니다. 협정관세를 적용받으면 품목에 따라 관세가 낮아지거나 사라집니다. 그런데 저절로 붙지는 않습니다. 원산지증명서가 있어야 합니다.
한중 FTA의 원산지증명서는 기관발급 방식입니다. 수출자가 알아서 써 주는 종이가 아니라, 협정에서 정한 서식으로 발급기관을 통해 발급받아야 합니다. 한국에서 발급받는 경우라면 세관과 상공회의소 두 곳에서 발급하고, 둘 중 어디서 받든 효력은 같습니다.
유효기간은 발급일로부터 1년입니다. 그리고 협정에서 정한 직접운송원칙을 충족해야 합니다. 중간에 제3국을 거치는 경로를 짜다가 이 요건에서 걸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견적 단계에서 이 질문을 넣으시면 됩니다.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 있는지, 발급 비용은 누가 부담하는지, 서류를 언제까지 보내 줄 수 있는지. 공장 규모가 작으면 해 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답 자체가 정보입니다.
내 품목이 실제로 얼마나 내려가는지는 품목번호마다 다릅니다. 이건 추측하지 마시고 확인하시는 게 빠릅니다. FTA 콜센터 1380이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열려 있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은 쉽니다.
넷째 칸 — 샘플과 양산은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샘플은 잘 나옵니다. 공을 들여서 만드니까요. 문제는 양산품이 샘플과 다르게 나왔을 때 기준으로 삼을 게 없다는 점입니다.
확인한 샘플에 번호를 붙이고, 그 번호를 주문서에 적어 두시길 권합니다. 색상은 눈으로 말하지 말고 색상 코드로 적습니다. 치수는 허용 오차 범위를 숫자로 적습니다. 몇 밀리미터까지 괜찮은지를 미리 정해 두지 않으면 나중에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됩니다.
불량이 나왔을 때 어떻게 할지도 미리 적어 둡니다. 재제작인지, 금액을 깎는지, 다음 주문에서 빼는지. 이 문장이 없으면 문제가 생겼을 때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됩니다. 그것도 이미 돈을 다 보낸 상태에서요.
다섯째 칸 — 결제 조건이 곧 단가입니다
선금 비율은 단가와 맞바꿀 수 있는 항목입니다. 선금을 더 내면 단가를 낮춰 주겠다는 제안이 자주 나옵니다. 계산은 해 볼 만합니다. 다만 첫 거래에서 전액 선금은 위험을 전부 우리가 지는 구조입니다.
잔금을 언제 치르는지도 정해 두셔야 합니다. 선적 전인지, 선적 서류를 받은 뒤인지. 검사 결과를 확인한 다음에 잔금을 치르는 조건이면 검사가 실제로 힘을 갖습니다.
환율도 여기 걸립니다. 선금과 잔금 사이가 두 달이면 그 사이 환율 움직임이 마진을 흔듭니다. 단가를 몇 센트 깎는 것보다 이쪽이 금액이 클 때가 있습니다. 계산할 때 환율은 지금 값 대신 조금 불리한 쪽으로 잡아 두시는 편이 마음이 편합니다.
개인 계좌로 보내 달라는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는 편이 낫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회사와 사람을 연결할 근거가 없어집니다.
전자책 안내
공장 없이 제품 만들고 해외에 판다
공장을 찾는 것부터 견적을 비교하고, 샘플을 확인하고, 첫 주문을 넣고, 통관까지 가는 과정을 순서대로 정리한 PDF입니다. 이 글에 나온 다섯 칸도 각각 어떤 문장으로 물어보면 되는지 예시를 붙여 두었습니다.
가격은 19,900원이고 PDF라 결제하시면 바로 받으실 수 있습니다.
안 되는 이야기도 적어둡니다
다섯 칸을 다 채운다고 좋은 공장을 만나는 건 아닙니다. 조건을 잘 정리해 놓고도 납기를 못 지키는 곳이 있고, 서류는 완벽한데 품질이 흔들리는 곳도 있습니다. 이 다섯 칸은 손해를 줄이는 장치이지 성공을 보장하는 절차가 아닙니다.
그리고 품목번호에 따라 관세율과 협정관세 적용 여부가 다릅니다. 이 글은 어떤 항목을 확인해야 하는지까지만 말씀드릴 수 있고, 내 물건이 얼마인지는 관세사나 위 콜센터를 통해 확인하셔야 합니다.

이번 주에 할 수 있는 것
세 가지면 충분합니다.
먼저 지금 받아 둔 견적서를 열어서 조건이 무엇으로 적혀 있는지 확인해 보세요. 아무것도 안 적혀 있다면 그게 첫 번째로 물어볼 질문입니다.
두 번째로 원산지증명서를 발급해 줄 수 있는지 한 줄로 물어보세요. 답이 오는 데 걸리는 시간과 답의 구체성만 봐도 그 공장이 수출을 얼마나 해 봤는지가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내 품목의 품목번호를 찾아서 1380에 한 번 전화해 보세요. 통화 한 번에 정리되는 숫자를 몇 주씩 검색으로 헤매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한 자료
- 한국무역협회 FTA 통합 플랫폼, 한·중 FTA 개요(발효일 2015.12.20., 원산지증명서 기관발급 방식·유효기간 1년·직접운송원칙, FTA 콜센터 1380) — https://okfta.kita.net/cmsCntnt?mnSn=53
- 한국무역협회 FTA 통합 플랫폼, 원산지증명서 발급 안내(발급 방식 구분, 한·중 FTA 한국 측 발급기관 세관·상공회의소, 유효기간 1년) — https://okfta.kita.net/cmsCntnt?mnSn=65
- FTA 무역종합지원센터, 「한-중 FTA 활용 1년의 애로사항과 대응방안」(한국 측 원산지증명서 발급기관은 세관과 상공회의소이며 두 기관 발급분의 효력은 동일) — https://www.origin.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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